1. 내 몸에 맞는 옷
아무리 좋은 옷이라 할지라도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볼품이 없습니다. 저는 경북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첩첩산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그 오지를 떠나서 부산이라고 하는 도시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처음 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지금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상리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자라온 환경이 그래서인지 도시의 정서는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내를 다녀오면 두통에 시달려야 했고 숨을 쪼여오는 것 같은 답답함과 여기저기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에 늘 예민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이 환경이 나에게 맞는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20대 초반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에 들어갔고, 군대에 가기 전 1년 반을 고향의 교회에서 교사로 섬기고 보냈습니다.
아마 이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 같습니다. 답답하던 마음이 뻥 뚫어지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잊지 못해 군에 제대하면 반드시 고향에 들어와야지 결심을 했지만 제대 할 때는 이미 가족들이 대구로 이사를 나온 이후여서 포기를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신학을 하게 되었고 도시지역에서 교육전도사, 전임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인품을 가진 부교역자이기보다 ‘트러블메이커’, ‘갈등 조성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라는 고민 속에 나는 이 도시사역이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경북 상주 함창교회에서 전임전도사, 문경의 점촌시민교회에서 부목사를 거쳐 2013년 2월 14일 현재 시무지인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상1리 “낙동신상교회”에 부임하여 8년을 보내고 9년째를 달리고 있습니다.
내게 맞는 옷이라는 제목으로 서두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의 정서를 발견하고 그 정서에 맞는 교회를 찾아 사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생기는 갈등이 목회자의 정서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맞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설교와 목회가 뛰어나신 분이신데 농촌목회에 실패하신 분을 보았고 다정다감하고 인품이 좋으시지만 도시 목회에서 실패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내 몸에 맞는 옷처럼 농촌 목회가 체질이도록 태어났고 자랐고 살아온 정서도 맞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있는 “낙동신상교회” 가 내 몸에 맞는 옷이 되었습니다.
2. 함께 같이 살아가는 삶
2013년 부임한 “낙동신상교회”는 아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원래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교회였지만 교인들과 목사님과의 갈등으로 목사님께서 옆 마을 신상2리에 새롭게 개척하고 남은 교인들이 통합측으로 편입되어 들어왔습니다. 통합측으로 바뀌어도 평안하지 않아서 이미 두 분의 목사님이 바뀐 후 부임한 것이 저였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선을 보기 위해서 설교를 하러 왔을 때 교인들의 질문이 다양했습니다. 연탄을 갈수 있느냐? 직분자를 세워줄 수 있느냐? 자녀들이 어린데 걱정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질문들이 목회를 잘 할 수 있는가? 묻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같이 살고 싶어서 이 교회에 오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대답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이었습니다. 특별한 목회사역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같이 사는 것 만큼 좋은 사역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마을 목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 ‘마을 목회’라는 말을 써야 하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을을 목회한다는 것보다 마을과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 그냥 같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목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나의 농촌목회는 너무나 평범하게 같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금 교회와 마을 관계를 표현하자면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목회자와 주민들과의 관계는 동네 아들이고 손자고 이웃이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이입니다. 교회가 지역에서 하고 있는 사역이 작은 일이 아니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은 함께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임 초부터 교인들에게 전도하지 말라는 선언을 했습니다. 30년 이상 전도했는데 전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가서 전도한다고 교회에 나오겠느냐? 동네일에 열심히 동참하고 봉사하면서 우리가 믿음의 모습을 보이면 저절로 되는 것이 전도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전도부장으로 세운 권사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마을에서 부녀회장을 하라고 하는데 교회일과 겹쳐서 고민이 된다고 했습니다. 부녀회장을 하시라고 전도부장만큼 부녀회장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마을을 잘 이끌고 계시고 이전보다 신나는 부녀회가 되었습니다. 2월 초 부흥회를 했는데 동네의 주민들이 20여분이 부흥회에 참석을 해 주시고, 3일 동안 헌금을 해주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농촌지역의 리 단위의 교회에서 꾸준히 교인이 늘고 있고 몇 주 사이에 등록을 하신 분이 세 분이나 됩니다. 지금은 공격적인 전도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지역과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추진하는 모든 일은 이 지역에 어떤 보탬이 되느냐를 고민하고 그에 따라 결정하고 있고 이 일들에 대하여 주민들이 교회를 진심으로 받아주고 있습니다.
3. 우리 교회는 꿈틀거려 보았습니다.
늘 성도님들과 나누면서 꼭 하는 이야기가 ‘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꿈틀대니까 기적이 일어난다.’ ‘작은 교회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몸부림이라도 쳐 보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늘 자주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돕는 손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교회와 인접해 있는 땅 365평을 2014년에 구입하고 등기까지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맹지이고 가운데 도랑까지 있는 경사가 심한 대지가 일부 있지만 밭이었습니다. 구입을 하고 손을 보려고 하니 재정도 없고 봉사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만난 구미시민교회 장로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지역봉사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손길로 그 땅에 맨홀을 박고 땅을 메우고 석축을 쌓고 정비해서 지금은 15톤 트럭이 다니는 넓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러 많은 분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서 시작한 일이 큰일이 되고 하나 둘씩 해 오면서 자신감을 얻어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으나마 꿈틀거리고 움직인 덕분에 일할 것이 생기고 교회가 일을 하니 여러 가지 사역과 사람들이 채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4. 준비를 시키신 하나님
교회가 준비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막상 부임을 하게 되니 농촌교회의 현실이 그렇듯이 패배의식과 작은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생각, 그리고 거의 정비 되어 있지 않은 교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본당 정문 입구에 3m 거리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부임 후 한 달이 되던 오후예배 때 성도님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교회의 장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자랑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족적인 교회”, “작지만 열심히 하는 교회”, “사람들이 좋은 교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시는데 다 들은 후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집에 손님이 오시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화장실 위치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생리적인 문제가 있으면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저희 집 화장실이 어디에 있습니다. 소개를 하면 그 사람의 긴장이 풀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 새가족이 오면 가장 먼저 화장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교회 화장실을 보면 새가족을 못 모시겠습니다.” 그 때 당차게 집사님 한분이 설교중인데도 “목사님 그럼 화장실 새로 만듭시다.” 이렇게 시작 되어서 수세식 화장실을 새로 짖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손님을 초대해도 집안을 청소하고 단장을 하는데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고 새가족을 초대하려면 먼저 그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환경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에 가장 민감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이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전 교회에서 전별금으로 받았던 모두를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2년간의 부목사 생활로 받은 전별금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성도들이 헌금을 하기 시작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같은 시찰에 있는 함창교회 강인철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함창교회는 제가 전임 전도사로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선교헌금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 목적하던 것이 없어졌고 그 헌금을 하신 분이 그냥 적립해 두는 것보다 사용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는데 함창교회는 저희 낙동신상교회에 지원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금액이 신기하게도 저희 교회가 공사 후 부족했던 금액과 일치하는 액수였고 전달을 받은 그 다음날이 바로 건축업자에게 잔금을 치러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며 찬양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본당 내부를 리모델링을 해서 교회가 작지만 이쁩니다. 이제는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도 너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편하게 누구나 찾아오고 머무를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 구석 구석 손이 안 간 곳이 없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의 모습들은 단장이 되어 갔습니다. 현관을 새롭게 꾸미고 주방과 식사하는 장소를 정비해 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준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먼저 어떤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는 교회로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사람들이 많아지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사람이 많아져도 머무를 공간이 없으면 모이지가 않습니다. 먼저 환경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5. 희망을 보면서
농촌 목회이지만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름다운 잔칫날]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일반 교회서 하는 총동원 전도 주일인데 어감이 좋지 않아서 우리 교회는 [아름다운 잔칫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분들을 초대할 때 교회에서 잔치를 하니 놀러 오라고 합니다.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 교회는 매달 넷째 주마다하고 벌써 3년이 다 되어갑니다. 2014년 5월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 때에 저희 교회가 20명 남짓 성도들이 나오고 많을 때는 26~28명 정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에 40명을 앉혀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40명이라는 기준은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해 8월 말부터 아름다운 잔칫날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은 특별히 목사 가운과 장로 가운을 입지 않고 설교와 예배진행을 새로운 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선물을 준비합니다. 이 선물의 원칙은 새 가족들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날 오는 모든 분들에게 다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가족이 4명이면 4개를 주는 것입니다. 한 개만 있어도 가정에 되지만 사람 수 대로 줍니다. 받은 선물이 남으면 다음 달 새가족을 초대할 때 전도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식사를 맛있게 준비합니다. 저의 고정 멘트가 있습니다. “이 교회 목사님이 밥을 안 먹고 가면 삐진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리고 이후에 또 교회에 오시라는 이야기를 절대하지 않습니다. 언제 하느냐? 한 달이 지나 다음 달 잔칫날에 그 때 초대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서 또 오라고 초대합니다.
저희 교회에 한 달에 한번 오시는 분들이 많을 때는 20명이 넘었습니다. 그분들 중에 “목사님 저는 두 번은 못 오고 한 달에 한번은 꼭 오겠습니다.” 그랬던 분이 벌써 2년이 넘게 나오시는 분도 여럿 있습니다. 교회 어르신들이 생신 때 자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녀들이 생신이라 식사를 하자고 하면 그 때 “넷째 주에 오너라. 우리교회 잔치한다. 내가 늘 얻어먹어서 그날에 떡이나 수박 좀 사오너라.” 그래서 가족들이 참석을 합니다.
저희 교회는 가끔씩 본당이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어르신 생신 때 오는 자녀들 때문에 교회가 가득합니다. 편안하게 자녀들이 다녀가는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타한 성도들이나 낙심한분을 초대하는 날을 가지며 다양한 잔칫날 행사를 가졌습니다. 아직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또 농사철과 겹치면 교회에 빠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크게 부흥한 교회는 아닙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좋은 이미지로 새로운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교회의 자리들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의외로 지금은 30대에서 50대 사이의 남자 성도님들이 10분이 넘어서 교회에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6. 아름다운 열매
저희 교회는 지역과 유대관계가 좋고 협력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안 되어도 마을이 잘되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한다. 교회가 아무리 잘 되어도 마을이 안 되면 교회까지 도태된다.” 저희 교회는 마을에 생기는 모든 일에 적극 참여하고 마을에 부녀회장, 반장들, 저희 동네는 아니지만 옆 동네 이장님, 면 체육회 회장님 등으로 적극적으로 지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 저는 ‘우리 목사님’으로 통할 정도입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가정에 TV가 안 되거나 보일러가 안 되면 목사인 저에게 연락이 옵니다.
2015년 타교회분 중 한분이 저희 교회 성도님께 지나가는 말로 그 목사님 다른데 빼앗기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 때문에 교회에서 위임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위임은 교회가 목사를 책임지고 목사님은 교회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약속인데 당시 교회는 미자립교회로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임과 아울러 자립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부터는 지원을 받는 교회에서 이제는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2015년 경서노회 국내선교부에서 마을 잔치로 100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때 음식보다는 음악회가 좋다는 의견을 모아 [신상리 마을음악회]를 가졌습니다. 한여름 8월초 저녁음악회에 300명 내외의 분들이 모여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전도의 목적보다는 낙후된 지역에 문화 행사를 통하여 활기를 갖자는 취지에서 교회와 지역의 상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구미에 있는 구미시민교회 문화부와 협력을 해서 성대하게 2회째 신상리 마을음악회를 가졌습니다. 참석하시는 분 선물을 300개를 준비 했는데 300개를 모두 주고 교회성도들과 구미시민교회의 많은 분들이 받지
못했습니다. 최소 350이상이 참석을 했습니다. 낙동면 내에서는 가장 큰 행사가 되었고 올해는 문화체육관공부의 지원을 받아서 4회 마을음악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한 번의 행사로 1년 동안 전도한 효과 이상을 얻었고 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올라가서 지역에 있어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교인들이 몇 주간에 공연을 준비해서 50명이상이 찾아오는 성탄발표회가 되었고 해마다 연 초에 가지는 부흥회는 반 정도가 주민들로 채워질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부흥회 기간에는 주변 세 개 마을회관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찾아올 정도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총회에서 우리교회가 총회 교회성장운동본부에서 시상하는 교회성장모범상을 총회장님 이름으로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천이 늦어져서 갑자기 선정이 되는 바람에 혜택을 받게 되었지만 목회를 하는 입장에서 보람도 되었고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주어진 환경에서 목회를 했는데 어느 시기가 되니까 하나 하나 열매가 되어서 맺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는 씨앗을 심지만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 위기를 기회로 돌파하며. - 예장귀농귀촌상담소 개소
2016년 교회에 있어서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한 해 동안 네 분이 돌아가시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과 따님 댁으로 도시로 이사를 가신 분을 합쳐서 일곱 분의 교인이 줄어들었습니다. 농촌교회에서 7명은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휘청할 정도는 아니라도 타격을 받았다 이야기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살펴보니 5년만 지나도 교인이 줄어 드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사택에 있는데 마을 이장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이분들은 절에 다니시는 분들인데 이장님도 이것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5년만 지나도 마을에 주민들이 확 줄어드는데 대책이 없습니다. 목사님! 무슨 좋은 대책이라도 없습니까?’ 여기서 시작한 것이 교회가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귀농귀촌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2016년 11월 28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농어촌부 주최, 경서노회 주관으로 [예장귀농귀촌상담소 상주낙동지소]를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귀농귀촌운동은 도시에서 들어오는 주민을 위해서 그리고 농촌교회의 교인감소에 대한 대책에서 귀농귀촌이었다면 우리 교회의 귀농귀촌 운동은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는 방안에서 추진되었습니다. 지금 마을에 품을 할 수 있는 일손은 78세,79세 어르신 두 분 밖에 없고 이제 연로하여서 농사를 접어야 하지만 맡아서 할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농사를 짓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상1리,2리 이장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여기에 지역의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들 반장들, 지역의 면장님, 시의원 등의 협조를 받아서 귀농귀촌상담소를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8.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현재 교회 입구에 상담소 사무실을 만들었고 귀촌을 하시는 분들이 임시로 머무를 수 있는 3채의 작은 주택을 건축하여 귀촌자 임시거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임시거처에서 1년간 지내면서 마을과 친교를 쌓고 농사를 배우면서 정착해서 거주할 주택을 준비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교인들 중에서 독거가정으로 혼자사시는 분들의 입주를 받아서 같이 살아가는 공동주택과 거주지로 만들려고 합니다.
위기는 기회를 얻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벌써부터 귀촌을 준비하는 분들이 교회를 찾아오고 있고 한 주에 한 건 정도의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욕심보다 한 해에 1가정만 받아도 농촌교회에서는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지금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낙동신상교회는 어렵지만 그래도 힘을 합해서 같이 가는 교회,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꿈틀대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기적을 만드는 교회입니다.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하며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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