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총회 교회성장상 수상
저희 낙동신상교회에 있어서 2016년은 특별한 해입니다. 그동안 자립대상 교회로 있다가 올해에 자립하게 되어서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4월1일 위임식과 안수집사님 임직식을 가졌습니다. 그날에 그 기쁨과 감동이 더 컸습니다. 위임을 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2015년에 위임을 결정하고 또 두 분의 안수집사님을 피택하고 당회의 지도아래 교육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에 넘어오면서 갑자기 피택되신 한분이 4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농사를 짓고 사시는 분들이 채무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지은 농사가 넉넉하다면 모르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빚을 내어서 농사를 짓고 농사 지은 것으로 빚을 갚으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집사님도 그것을 고민하시다가 도저히 중직자로 덕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과 부담감으로 어찌할 바 몰라 했습니다. 심방을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던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빚에 놀랐고 집사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목사님, 안수집사가 되지 않아도 봉사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저히 미안해서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사님께 “충분히 집사님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바로 결정할 수 없으니 시간을 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님들에게 임직식을 연기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노회 임원분들께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40일간의 작정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하려는 인간적인 노력보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자는 마음에 40일간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행히 교인들의 마음도 하나가 되어 묵묵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40일이 되던 날 저녁에 장로님들과 임직하실 분들을 모았습니다. “이제 여기 이 자리에서 모든 결정을 했으면 합니다.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 때 한 분의 장로님이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어렵다고 우리가 외면을 하면 안 됩니다. 함께 갑시다.” 그리고 같이 임직하시는 분도 “나는 끝까지 집사님과 같이 가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시던 집사님이 그 사랑의 마음과 모두의 진심을 받아들였습니다.
저희 낙동신상교회에 대해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저희 교회를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해야하는 것이 교회의 특징입니다. 저희 교회의 특징은 [아픔이 있지만 그래도 함께 가는 교회] 라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상처도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하니까 여기까지, 지금까지 올 수 있는 교회, 그래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교회의 역사 및 지리적 위치
저희 낙동신상교회는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상1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교회도 아니고 면 소재지 교회도 아니며 ‘리’단위 작은 농촌교회입니다. 김천과 가까운 관계로 용문산계열의 몇 성도들이 마을에 모여 교회를 시작하여 이제 36년이 된 교회입니다. 예장 대신측 교회에서 시작을 해서 주변의 교회들이 대부분 합동측 교회로서 합동측 소속 교회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갈등으로 목사님이 신상2리에 개척을 하시면서 교회가 분리되었습니다. 실제 분리가 된 것이 아니라 교적을 가지고 가시게 됨으로 건물을 있으나 소속이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교인들로 통합측, 저희 교단에 들어오게 되고 경서노회 상주시찰이 되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 저희 교단에 두 분의 목사님이 계셨지만 원만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번부터 목회자에 대한 불신이 있었지만 20명 내외의 교인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앙적 열정은 가지고 있었지만 ‘리’지역 교회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회자와 성도간의 갈등이 생겨나고 그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노회가 관여해야할 사항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지역적 한계를 느끼는 목회자와 불신을 느끼는 교인들 간의 갈등으로 노회의 중재로 새로운 목회자를 모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낙동신상교회에 부임하게 된 배경
그 때 제가 2013년 2월에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전 해 9월에 한 교회와 청빙이 약속되어 있었는데 연말 그 교회의 사정으로 취소가 되었을 때에 상심이 컸을 때였습니다. 그 때 제가 기도하며 받았던 응답이 ‘그 전의 교회는 내가 가고 싶은 교회였다면 이 교회는 내가 가야할 교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가고 싶은 교회에 대한 소망이 있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목회자라면 하나님께서 가라하는 곳에 가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 결정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목회자의 정서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시교회의 부교역자로서 원만한 관계보다 의도치 않은 트러블이 교인들과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촌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는 이 정서의 차이로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느냐? 농촌정서이다. 그렇다면 농촌교회와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동신상교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고등학교와 청년시기에 고향의 작은 농촌교회에서 봉사했던 것이 저에게 알맞은 옷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낙동신상교회에서도 그 부분을 인정해 주셔서 압도적인 지지로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 과정
막상 부임을 하게 되니 농촌교회의 현실이 그렇듯이 패배의식과 작은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생각, 그리고 거의 정비 되어 있지 않은 교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본당 정문 입구에 3m 거리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부임 후 한 달이 되던 오후예배 때 성도님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교회의 장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자랑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족적인 교회”, “작지만 열심히 하는 교회”, “사람들이 좋은 교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시는데 다 들은 후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집에 손님이 오시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화장실 위치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생리적인 문제가 있으면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저희 집 화장실이 어디에 있습니다. 소개를 하면 그 사람의 긴장이 풀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 새가족이 오면 가장 먼저 화장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교회 화장실을 보면 새가족을 못 모시겠습니다.” 그 때 당차게 집사님 한분이 설교중인데도 “목사님 그럼 화장실 새로 만듭시다.” 이렇게 시작 되어서 수세식 화장실을 새로 짖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손님을 초대해도 집안을 청소하고 정비를 하는데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고 새가족을 초대하려면 먼저 그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환경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에 가장 민감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이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전 교회에서 전별금으로 받았던 모두를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2년간의 부목사 생활로 받은 전별금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성도들이 헌금을 하기 시작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한 가지 일이 더 일어났습니다. 교회 어디에도 비가 오면 빗물이 빠질 하수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지붕에서 모인 빗물과 사택지붕에서 모인 물, 옆집 지붕에서 모인 물이 다 모여서 본당 출입구 앞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물은 신발이 젖지 않고는 본당에 들어 갈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이 두 가지는 꼭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소요되는 금액이 올라가고 교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 같은 시찰에 있는 함창교회 강인철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함창교회는 제가 전임 전도사로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선교헌금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 목적하던 것이 없어졌고 그 헌금을 하신 분이 그냥 적립해 두는 것보다 사용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는데 함창교회는 저희 낙동신상교회에 지원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낙동신상교회가 그 전 목회자와 재정문제로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함창교회의 당회원들이 직접 전달해 드리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금액이 신기하게도 저희 교회가 공사 후 부족했던 금액과 일치하는 액수였고 전달을 받은 그 다음날이 바로 건축업자에게 잔금을 치러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며 찬양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늘 성도님들과 나누면서 꼭 하는 이야기가 저희 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꿈틀대니까 기적이 일어난다. 작은 교회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몸부림이라도 쳐 보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이다. 늘 자주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는 말씀입니다.
그해 6월에 저희 교회 본당의 지붕을 교체 하였습니다. 4월이 되고 5월이 되니 참새들이 지붕에서 새끼를 쳤습니다. 슬레트 지붕위에 함석을 올린 구조라서 슬레트 틈을 타고 새들이 교회 지붕 안으로 들어와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낳았습니다. 새벽기도회 때면 천정이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천사들의 합창이 아니라 참새들의 합창이었고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늘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가까운 교회 목사님께 했더니 대전에 있는 대전영락교회(김등모목사님담임)에서 시골교회 교회지붕 개량을 봉사하는데 신청해 보라고 했습니다. 서류를 준비해서 보냈더니 낙동신상교회가 6번째 후보 교회였습니다. 전반기에 한 교회, 하반기에 한 교회를 봉사를 하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아직 우리교회는 당장 문제 있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해 주셔도 고맙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본당에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설교 준비한 것을 연습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왔습니다. 갑자기 천정 한 곳을 지지하고 있던 각목이 제 눈앞에서 ‘쿵’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큰일 났습니다. 지지하는 각목이 물기에 젖어서 떨어지면 천정 합판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주가 지나고 대전영락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 지붕 개량하는 교회로 낙동신상교회가 결정되었습니다. 여러 번 봉사를 했지만 하고도 큰 의미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열심히 하려는 교회를 선정하자고 해서 목사님 교회가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돕는 손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교회와 인접해 있는 땅 365평을 2014년에 구입하고 등기까지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맹지이고 가운데 도랑까지 있는 경사가 심한 대지가 일부 있지만 밭이었습니다. 구입을 하고 손을 보려고 하니 재정도 없고 봉사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만난 구미시민교회 장로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지역봉사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손길로 그 땅에 맨홀을 박고 땅을 메우고 석축을 쌓고 정비해서 지금은 15톤 트럭이 다니는 넓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구미시민교회(조민상목사님담임)를 천사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저의 자녀에게 매해마다 장학금을 주시는 점촌시민교회(문병식목사님담임), 봉사와 헌금으로 지원해 주신 경서노회 남선교회, 여전도회 연합회, 또 김명신 집사님께서는 갑자기 찾아 오셔서 “목사님 교회 마당이 너무 파였습니다. 남편이 골재 사업을 하는데 정비해 드리겠습니다.” 등 여러 많은 분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만큼 도농교회간 협력과 동방성장에 적용이 잘된 교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교회를 도와주십니다.
도움만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2013년 11월에 장로님 두 분과 권사님 네 분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제가 부임할 때의 약속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요청이 중직자를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교회에 사람이 세워진다는 것은 일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고 교회가 감당하는 일이 많아지는 좋은 일입니다. 열심히 가르쳤고 임직을 했습니다.
임직 전에 그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본당을 리모델링했으면 좋겠습니다.” 임직자들이 먼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업체에 맡기면 많이 들지만 우리가 직접하면 저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대략 얼마정도 예산이 듭니까?” 임직하시는 분들이 “목사님 우리가 돈은 만들어 볼테니 어떻게든 합시다.” 저는 아직 그분들이 얼마씩 헌금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전체 금액은 알지만 각자 부담한 금액은 모릅니다. 은혜롭게 잘 진행되었고 지금은 저희 교회 본당이 너무나 아름답고 이쁩니다.
천정을 직접 철거하고 함께 땀 흘려 일했습니다. 전문적인 것은 목수나 전문가들이 했지만 대부분 직접 일을 했습니다. 교회 내부 벽면에 흡음제와 단열재를 붙이다가 칼에 손등을 베어서 응급실에 가기도 하고 교인들과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고 새벽 4:30분에 마무리하고 기도하고 집에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본당은 보기가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땀과 정성, 손때가 구석구석 묻어 있으니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이런 일들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2014년에는 365평의 땅을 구입했고 2015년에는 교회 차량 스타렉스를 구입했습니다. 당회에서 교인들이 부담되니 중고차를 구입하자고 했지만 교인들은 “저희들이 헌금하겠습니다. 모자라면 농가대출이라도 받아오겠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헌금과 또 빌려온 돈으로 전액 현금을 주고 그해 3월에 구입해서 11월에 빌려온 돈까지 모두 갚았습니다. 저희 같이 작은 교회에서 2500만원은 재정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런데 별도의 특별헌금으로 할 수 있었던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작지만 힘이 있는 교회입니다.
낙동신상교회의 성장 중점 사역들
낙동신상교회의 중점 사역은 구역 예배와 아름다운 잔칫날입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저희 교회는 구역예배를 드립니다. 매월 1,3주 주일오후 찬양예배에 공동체예배라는 개념으로 성도의 가정에 가서 구역예배를 드립니다.
이 구역예배에 참석하는 분이 주일 낮 예배 참석의 70~80% 가량이 참석을 합니다. 가정의 축복은 가정 제단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신앙의 현장이 교회에서 가정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가정구역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3구역으로 나누어서 예배를 드리지만 차량편이 되지 않아서 더 이상 구역을 늘릴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또 다른 사역의 하나는 [아름다운 잔칫날]입니다. 일반 교회서 하는 총동원 전도 주일인데 어감이 좋지 않아서 우리 교회는 [아름다운 잔칫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분들을 초대할 때 교회에서 잔치를 하니 놀러 오라고 합니다.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 교회는 매달 넷째 주마다하고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
2014년 5월에 갑자기 하나님이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 때에 저희 교회가 20명 남짓 성도들이 나오고 많을 때는 26~28명 정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에 40명을 앉히고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40명이라는 기준은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정도로 보았습니다.
이 마음이 들자 갑자기 겁이 나고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까? 아니면 저의 욕심입니까? 한 달이 지나자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회때 장로님들에게 “이런 감동이 들어 [아름다운 잔칫날]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40명을 앉혀놓고 예배드려 봅시다.” 장로님들이 “목사님, 바로 당장 합시다.” 그 때 제가 장로님들께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한 달 동안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인데 바로 결정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달 동안 기도하고 그 이후에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직회 때 성도님들에게 이야기를 드리니 성도들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이야기 했습니다. “저와 장로님들은 한 달 동안 기도하고 결정했는데 여러분들도 기도하고 결정합시다.” 그래서 그해 8월 말부터 아름다운 잔칫날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은 특별히 목사가운과 장로 가운을 입지 않고 설교와 예배진행을 새로운 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선물을 준비합니다. 이 선물의 원칙은 새 가족들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날 오는 모든 분들에게 다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가족이 4명이면 4개를 주는 것입니다. 한 개만 있어도 가정에 되지만 사람 수 대로 줍니다. 받은 선물이 남으면 다음 달 새가족을 초대할 때 전도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식사를 맛있게 준비합니다. 저의 고정 멘트가 있습니다. “이 교회 목사님이 밥을 안 먹고 가면 삐진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리고 이후에 또 교회에 오시라는 이야기를 절대하지 않습니다. 언제 하느냐? 한 달이 지나 다음 달 잔칫날에 그 때 초대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서 또 오라고 초대합니다. 저희 교회에 한 달에 한번 오시는 분이 많을 때는 20명이 넘었습니다. 그분들 중에 “목사님 저는 두 번은 못 오고 한 달에 한번은 꼭 오겠습니다.” 그랬던 분이 벌써 1년이 넘게 나오시는 분도 여럿 있습니다.
교회 어르신들이 생신 때 자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녀들이 생신이라 식사를 하자고 하면 그 때 “네째주에 오너라. 우리교회 잔치한다. 내가 늘 얻어먹어서 그날에 떡이나 수박 좀 사오너라.” 그래서 가족들이 참석을 합니다. 저희 교회는 가끔씩 본당이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어르신 생신 때 오는 자녀들 때문에 교회가 가득합니다. 편안하게 자녀들이 다녀가는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타한 성도들이나 낙심한분을 초대하는 날을 가지며 다양한 잔칫날 행사를 가졌습니다.
아름다운 잔칫날에 40명이라는 목표는 바로 첫 행사부터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가끔씩 40명 이상씩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 한분이 “목사님, 저는 이제 50명두고 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 그릇이 작아서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등 떠밀려서 2015년도부터 우리교회는 50명을 두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가끔씩 50명이 모이기도 합니다.
아직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또 농사철과 겹치면 교회에 빠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크게 부흥한 교회는 아닙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좋은 이미지로 새로운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교회의 자리들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의외로 지금은 30대에서 50대 사이의 남자 성도님들이 10분이 넘어서 교회에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목회지번과 계획
앞으로의 목회계획은 구입한 땅, 365평에 공동주택을 지어서 모여 사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골교회의 현실이 전도해서 교회를 채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귀촌하시는 분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구입한 땅에 지역주민 4가구, 귀촌 가정 6가정해서 10가정의 단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얼마 전 설계를 하려고 하니 지역에 오수관 설계가 되어 있어서 땅을 현재의 높이에서 1.5m 이상 올려야 한다는 문제가 생겨서 지원을 받으려고 사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교회는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서 10년 후에는 교세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귀촌 단지를 만들어서 교회가 사람들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 지역에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지금은 귀촌자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귀촌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지역민들과 관계에서 오는 적응의 실패, 그리고 귀촌 실패 후에 투자 했던 집과 농지가 많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단절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가정의 여자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귀촌의 징검다리가 되고 지역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장소로 교회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농촌교회의 역할이 있다고 보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귀촌자와 지역민을 위한 공동주택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지역과 유대관계가 좋고 협력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안 되어도 마을이 잘되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한다. 교회가 아무리 잘 되어도 마을이 안 되면 교회까지 도태된다.”
저희 교회는 마을에 모든 일에 적극 참여하고 마을에 부녀회장, 반장들, 저희 동네는 아니지만 옆 동네 이장님, 면 체육회 회장님 등으로 적극적으로 지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 저는 ‘우리 목사님’으로 통할 정도입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가정에 TV가 안 되거나 보일러가 안 되면 목사인 저에게 연락이 옵니다.
2015년 경서노회 국내선교부에서 마을 잔치로 100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때 음식보다는 음악회가 좋다는 의견을 모아 [신상리 마을음악회]를 가졌습니다. 한여름 8월초 저녁음악회에 300명 내외의 분들이 모여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올해도 지역과 이웃교회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도의 목적보다는 낙후된 지역에 문화 행사를 통하여 활기를 갖자는 취지에서 교회와 지역의 상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낙동신상교회는 어렵지만 그래도 힘을 합해서 같이 가는 교회,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꿈틀대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기적을 만드는 교회입니다.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하며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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