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아 봅시다.
(영남신학대학 개교기념포럼 2021년 5월 13일)
우리는 하나님 사랑, 복음, 구원이라고 하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태초부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끊임 없이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혼돈이 옵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로~ 극변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비유를, 이것으로 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 즉 시대정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역할은, 우리 신앙의 가치들을, 얼마만큼 그 시대라는 그릇으로, 담아 낼 수 있는 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종교가 시대와 동떨어지는 이유는, 그 시대에 올바른 그릇으로 신앙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남신학대학교가, ‘현장 지향적인 신학교육’을 표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그 현장을 외면 했기 때문입니다. 시대정신을 가지고, 신앙을 현장에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실 좋은 목회자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목회자가 가장 중점을 두는 전도나 심방을 하지 않는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비판은 하지 말아 주십시요. 저는 심방을, 정말 싫어 합니다. 그냥 ‘마실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자연스러운 만남(?)’을 좋아합니다. 정장을 차려 입고, 성경책을 끼고 가는 심방은 하지 않는데, 작업복을 입고 장화를 신고, 자연스러운 교인들과의 만남은 어느 누구보다 많이 합니다. 심방은 싫어 하는데, 같이 어울려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은 좋아합니다.
저는 낙동신상교회에서 8년을 사역했고, 올해가 9년차입니다. 부임 후 2달이 되었을때, 교인에게 전도하지 말라고 선언했습니다. 30년 동안 찾아 갔는데, 아직도 안 오면, 더 이상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시하면 안됩니다. 저희 교회는 농촌 ‘리’단위 교회이지만, 재적이 60명이 넘습니다. 70세 이상보다, 70세 이하 교인이 더 많습니다. 작년 코로나 상황에도 등록 교인이 3명이나 됩니다. 올해도 1명이 등록을 했습니다. 작년엔 처음으로, 세례를 받는 분이 없었습니다. 전도는 하지 않는데, 새가족은 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판은 말아주십시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 비판을 많이 한 학생이라,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지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2016년, 저희 교회는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어느날 저녁에 절(불교)에 다니시는 이장님 부부가 저희 집에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마을에 올해 네 분이나 돌아 가셨는데, 앞으로 마을 꼴이 말이 아닙니다. 뭔가 대책을 세웁시다.” 저는 그때까지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일반적인 목사였습니다. 저를 찾아준 이장님이 고마워서, 처음으로 마을을 살펴 보았는데, 5년만 지나도~ 심각해지고, 10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마을의 존립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교회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을 설득 해서,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을 멈추더라도, 마을부터 살리고 보자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가 앞장을 서서, ‘귀농귀촌 운동’을 했습니다. 3~4년 사이, 마을에 지어진 집이 15채가 넘습니다. 아마 더 될 것입니다. 그 중에는 기존 사시던 분이 지은 집도 있긴 하지만, 그 만큼 사람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3명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신상1리는 인구가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뛰어 다녔는데, 교회는 성도들이 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이것은 저의 자랑이 아니라, 사례발표가 사실 다 그렇습니다.
만일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어떤 목회 철학으로, 그런 일을 하십니까?” 물으시면 저는 “그런 것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 선교부장을 맡고 계신 집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이장일 때, 마을 공원을 만들었는데, 활용이 안 되어서 풀밭이 되어가고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그래서 옆동네 신상2리 공원을 살려 보자고 ‘신상리 마을음악회’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6년 째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낙동면 안에 두 곳을 더해서, 낙동리, 상촌리에서도 음악회를 합니다. 신상2리 공원은 작년에, 공연장이 만들어 졌고, 번듯한 공원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등 떠밀려 음악회를 해야 하는데, 비대면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장님이 먼저 찾아와서, 마을을 위해 대책을 강구하자고 해서, ‘귀농귀촌 상담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가 운영중인 ‘귀농인의 집’이 4채나 됩니다. 1년간 일단 살아보는 집이 상주에서는 가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귀농인의 집에 들어오겠다는 분들이 줄을 섭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려고, 찾아가지 않습니다. 저를 만나겠다고 전국에서 찾아옵니다. 가끔씩 상주시청 직원이 자신이 바쁘다고, 이번에 귀촌상담은 목사님이 해달라고 저에게 넘기기까지 합니다. 마을에 귀촌해서 들어 오신 분 중에, 목공과 철공에 재주가 있어서, 공작소를 하고 싶다고 해서, 폐가를 빌려서 ‘신상마을 공작소’를 만들었습니다.
마을에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1,500평 해바라기 밭’을 운영합니다. 교인들 몇 사람이 천연염색을 배우러 다녀서, ‘천연염색 체험장’을 만들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회관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구술로 받아 적어서 마을회관에 걸었는데, 교인들이 우리는 안 하냐고 해서, 교회에도 어르신 글을 게시판에 전시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서, 모으다 보니 60편의 글이 되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신상마을 이야기’라는 책을 만들어, 추석에 방문한 가족들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얼마전 장례식에서 별세하신 권사님의 글을, 유가족들에게 읽어 드렸습니다. 전부 울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냥 그렇게 삽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낙동면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요’라는 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서, 사업비 전액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장의 목회자이다 보니, 학문적인 것을 잘 논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부, 경험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고, 모두 주관적입니다. 저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하면, 제가 먼저 시작한것 보다, 지역의 요청이 있었고, 그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대응 하다가 보니, 교회가 하는 일이 많아졌고, 2017년에는 총회에서 주는 ‘교회성장 모범상’을 받게 되었고, 총회 ‘농어촌선교부 산하단체 협의회’ 임원 또, 산하단체인 ‘예장귀농귀촌상담소 협의회’ 회장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네 회의를 하면 마을 회관에 있었고, 낙동면의 혐오시설 반대 시위자리에도 있었고, 제가 있는 현장이~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마을의 무슨 일이 생기면, 그곳에 늘 제가 있었습니다. 공원을 살리는 일, 귀농귀촌 운동도 그렇고, ‘꽃피는 신상마을 만들기’도 그렇고, ‘농촌작은 문화교실’도 그렇고, 그 현장에 우리가~ 지금 있는가를 먼저,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시대 정신이라고 하는 그릇을, 만들어 낼 수가 있고, 그래야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님 사랑’은 자연스럽게, 지역 사랑으로 이어지고, 우리 교회가 낙동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은 누구나 인정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랑’을 지역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함께 같이 살아 간다’는, 낙동신상교회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같이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녹아 내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고, 삶을 나누며 만나는 곳이 있으니, 강요된 복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 주는, 복음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그 지역 사회 안에 들어가 있는 교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장 지향적인 신학교육’ 결국, 그 시대의 요청, 그 지역의 요청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지금은 코로나 상황입니다. 저희 교회는 작년에, 교회가 교인들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교회가 ‘지역상품권’을 만들어서, 지역 상가에서 쓰도록 했습니다. 9차례나 걸쳐, 교인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의 설교 영상보다는, ‘신상마을 이야기’라고 하는, 소소한 이야기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만나지 못한다면,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맞는 목회를 하려고, 끊임없는 도전을 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제언이 있습니다. 몇년 전에~ 세 번의 강의를 학교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강조 했던 것이, 현장에 대한 파악을, 좀 깊이 있게 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있는 신상1리는, 56가구 정도 됩니다. 신상2리는 73가구 정도이구요. 2020년 통계로 낙동면은 2,230가구이고, 인구는 4,183명 정도 됩니다. 70%정도가 전업농이고, 기타가 30%됩니다. 제가 목회하고 있는 지역의 기본 현황, 특성들을 저는 줄줄 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기 선교를 가더라도, 그 지역의 기본적인 조사를 합니다. 관공서나 회사에서, 신규 기획안을 만들 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현황과 통계’입니다. 이런 이런 자료와, 근거 위에 계획이 수립 됩니다. 우리가 사회의 방법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회 계획이나,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기본적인 조사가 되어야 하고,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지역 이슈나, 교인들의 관심에서 외면된 계획은, 뜬구름 잡는 것이 되고, 결국은 현장에서 외면 받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의학지식과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혼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실력은~ 현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복음이라고 하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담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제의 제목을 ‘같이 살아 봅시다. 그기에 답이 있습니다.’로 정해 보았습니다. 그 곳에 직접 살아가고 있다면, 비록 그들이 어린 아이일지라도, 그들이 청소년이라도,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 줄 것입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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