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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함이 있는 낙동신상교회
1. 낙동신상교회

예장뉴스에 소개된 낙동신상교회

by 내다0316 2022. 10. 28.

낙동 신상교회 귀농 귀촌 상담소 사례

낙동신상교회는 올해 40주년을 맞는 교회로 지난 2013년 김정하 목사가 부임했다. 그는 국립 부산기계공고를 나온 재원으로 이후 영남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경서노회에서 전도사를 거쳐 부목사 생활을 하였고 첫 단목 목회지로 경서노회 소속 낙동신상교회로 부임했다. 이 교회가 있는 주변에 과거 김천 용문산의 나운몽 원장의 신앙공동체 뿌리가 드리운 인근 기도원에서 출발한 신앙공동체였다고 한다.

교회는 상주시에서 낙동강 선산쪽으로 가는 국도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은 여기서 영덕과 영천으로 가는 고속도 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상주는 옛날에는 경주와 상주를 합쳐서 경상도라고 할 정도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3백의 고향(쌀과 배 누에)으로도 유명한다. 큰 태풍도 상주까지는 오지않아 농사짓기에 천혜의 땅이여서 양잠과 곶감, 포도로도 유명하다.   


이 후 인근 교회로 출발한 이들이 합동측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가 이전 목회자과 교인들의 갈등 끝에 목회자가 인근인 신상 2리에 일단의 교회들과 나가 개척을 하게 되었다 그후 교인들이 통합 측 교단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앞서 두분의 목회자를 모시지만 모두 교인들과 맞지 않았다고 한다.

우스운 얘기는 부임차 선을 보러온 그에게 교인들은 “연탄 갈 수 있냐, 직분을 줄 수 있냐“ 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우리 도움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지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정하 목사는 이렇게 답했는 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같이 살고 싶어서 이 교회에 오려고 합니다“ 라고 말해서 합격이 된 것이다. 

저출산과 인구감소로 인한 사회문제는 산업과 시장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직격탄을 맞은 격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대면예배의 단절과 전도나 선교 활동의 위축은 심각하다. 이에 더 이상 전도가 막힌 교회들로써는 이제 마지막 대안은 마을목회다. 그간 협동조합이나 어린이집도 문들을 닫은 형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인이 줄지않고 는 교회는 낙동신상교회가 유일한데 모든 것은 결국 교회의 안정화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양육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신학수업과 농촌교회 부임 동기
김정하 목사는 젊다. 보통 옛날에는 농어촌에는 나이 많은 은퇴직전의 목회자들이 노후를 보내는 곳이었다면에서 그는 젊은 목사다. 그는 영덕이 고향인데 부산서 공부하고 도시생활을 했지만 머리가 아프고 적응이 되지 않아 군입대전 고향가서 교회학교 교사로 섬겼다. 제대후에도 농촌가서 평범하게 지내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신학졸업후 도시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 적응이 되지 않고 사람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목회자라면 갈등조정자가 되야 하는 데 이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도시사역을 뒤로 하고 함창교회 전도사를 거쳐 점촌시민교회 부목사를 거쳐서 2013년 상주 낙동신상교회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모든 농촌교회가 그렇듯이 보수적인데 그렇게 부임한 신상교회를 김목사는 귀농귀촌상담소를 개소했으니 3년만에 천지개벽을 만들어 논 셈이다. 물론 이면에는 그만큼 교회나 교인들 주민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남다른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서노회에서 유일하게 처음 시작된 귀농귀촌상담소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일을 세상방식으로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지자체나 마을만들기 등은 교회적 용어나 방식이라기 보다는 문제를 교회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문제를 진단하고 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안의 양을 돌보면 세상을 향하여 저 죄인들이 언제나 구원을 받을 까 하는 영적우월감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마을목회자 귀농귀촌 운동은 복합적으로 심층적으로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당장은 우리안의 양이 아니지만 같은 땅을 밟고 살며 우물을 사용하고 산과 자연의 혜택을 입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재해나 어려움도 같이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안이냐 밖이냐가 아니라 같은 공동체라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예장 귀농귀촌상담소 출발

예장에서 농어촌 지역에 대한 선교적 차원의 목회는 시대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지난 2017년 마을목회에 이어 예장 귀농귀촌 상담소가 세워진 것도 그 일환이다. 홍성군 신동리교회에 9월에 세워진 이래 2번째로 세워진 곳이 상주 신상 낙동교회의 상담소로 지금 까지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신상교회 상담소는 두번째로 세워진 곳이다. 

현재 예장 내 상담소가 있는 곳은 홍성군 신동리교회, 경북 상주시 낙동신상교회, 경남 진주노회, 경남 거창군 거창우리교회, 충남 태안군 한마음교회, 경남 함양군 늘푸른교회, 경북 의성군 상화교회, 경북 안동군 장사리교회, 전남 임실군 천담리교회, 전남 남원시 갈계서부교회, 경남 진주시 초원교회, 전남 무안군 대중교회, 전남 담양군 갈전교회, 전남 영광군 송신교회, 경북 청송군 신성교회, 경북 예천군 수계교회, 전남 고흥군 세곡교회, 충남 논산시 덕곡교회로 현재 18개 지소가 개소 되었고, 충북 괴산군 괴산중부교회, 경북 봉화군 임기교회가 개소 준비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소 주요 활동
고령화, 지역사회 붕괴, 농촌교회 위기라는 현실 속에서 나름의 해결방안 모색하던 중 귀농귀촌인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이 농촌교회의 살 길이라는 판단으로 관심있는 교회와 목사님들이 모이게 된다. 2016년부터 통계상으로 년간 50만명이 귀농귀촌을 하고 있고 2013년부터 2017년 까지 300만여명의 이주되었지만 그중에 50%가 3년내에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는 통계다

이에 지역사회 안에서 기본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교회가 귀농귀촌인과 지역주민간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정착을 돕는다면 마을이 살고 교회도 사는일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이들의 정착과 자립을 위해서 도.농교류, 농산물 직거래, 귀농귀촌세미나 운영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귀농귀촌을 하려는 분들 대부분은 농촌지역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여기서 오는 ‘환상’과  ‘현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환상에 사로잡히지만, 곧 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도시와 농촌은 삶의 환경이 다른 데 경제활동이 도시는 월급을 받는 한 달 단위의 활동이 이루어 지지만 농촌은 일년 동안 일해야 수입이 생길 수도 안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귀농귀촌에는 마음의 준비와 아울러 여러 가지 정보와 경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귀농귀촌을 위한 단기간 체류 가옥을 준비하는 등 맞춤형 귀농귀촌을 위한 다양한 것들이 준비되고 있다. 농촌에는 도시처럼 필요한 물건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고 도시에서 누리던 대부분의 편의시설이 없다.


농촌생활 낭만만으로는 안된다.
또 농촌은 가까이에 자연이 있어 좋지만 벌레와 풀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개인이 낭만으로 생각하는 환상이나 이상을 현실화 해야 한다. 예을 들어 전원에 가서 좋은 먹거리를 먹고 건강한 삶을 누리고 남는 것은 팔거나 사논 땅도 투기적 성격으로 값도 오를 것이라는 상상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게 앞선 경험자나 현장의 소리다. 그러다 보니 여기 저기 좋다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시간과 재정만 손해를 보는 수도 있다. 따라서 어디가 되든 한 1년전도 살아보면서 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신상교회는 지금도 귀농과 귀촌을 원하는 은퇴 목회자 청년등 누구나 환영하고 있다. 주택도 제공하고 일자리도 알선해 준다는 것이다. 

경북 상주시 같은 경우는 2019년 5월부터 귀농귀촌인에게 주거임대료를 지원을 해준다. 1년간 임대료를 본인이 지급하면 1년후에 상주시가 지원한다. 최대 3년간 가능한다. 1인가구 월10만원, 2인가구 월15만원, 3인가구 월20만원, 4인가구 월25만원으로 최대 3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읍면지역의 주택으로 무허가주택이나, 원룸, 빌라등은 제외이다. 전입을 하고 1년간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인구유입 정책차원에서 하고 있다.

집과 땅을 구입하지 않고도 농촌에서 살아가면서 체험을 통하여 가능성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귀농귀촌이 환상이고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투자된 비용없이 툴툴털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수 있다. 정착 이후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도 늦지 않다. 귀농귀촌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간은 5년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귀농귀촌 후 경제활동.
농사를 지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면, 절대 농지를 구입해서 농사 짖지 말라는 조언이다. 귀농귀촌인은 전문가가 아니니 크게 하고 투자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차라리 일당을 받고 일을 하면서 농사를 배우거나, 과수원 같은 경우에 이제 연로해서 농사를 짖지 못하는 곳을 임대해서 농사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농부에게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대한 과수원을 제대로 관리 못하면 그 해만 아니라 다음 해까지 피해를 본다. 그래서 잘 임대해 주지 않는다. 물어야 한다. 묻기 위해서는 찾아가야 한다. 내가 일을 해주던지 먼저 도와줘야 나를 도와 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새로운 작물은 유통망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같이 망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 오이농사 같은 경우 일년에 1억번다고 해서 엄청많이 했는데 지금은 일한 만큼 밖에 벌지 못한다.) 지역주민과 다르게 귀농인은 도시에 지인이 있다. 현지분들은 공판장에 도매가로 팔아야 한다. 하지만 귀농인은 장점은 지인찬스가 있다. 지인찬스는 일반적인 농작물 로 이용을 한다. 특용작물은 짐을 지우기다.

낙동 신상교회는 교인만이 아니라 마을의 주민과 함께 하는 교회다. 상주시에서도 이 교회의 귀농귀촌상담소에게 주택을 제공했고 노인들을 위한 여러사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귀농귀촌을 통하여 정착한 교인들도 있고 특히 농촌이지만 젊은이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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